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집시의 기도

울/park eul soon 2010-06-03 12:04:09 2


집시의 기도


- 충정로 사랑방에서 한동안 기거했던 어느 노숙인의 시

둥지를 잃은 집시에게는

찾아오는 밤이 두렵다.

타인이 보는 석양의 아름다움도

집시에게는 두려움의 그림자일 뿐……


한때는 천방지축으로 일에 미쳐

하루해가 아쉬웠는데

모든 것 잃어버리고

사랑이란 이름의 띠로 매였던

피붙이들은 이산의 파편이 되어

가슴 저미는 회한을 안긴다.


굶어죽어도 얻어먹는 한술 밥은

결코 사양하겠노라 이를 깨물던

그 오기도 일곱 끼니의 굶주림 앞에

무너지고


무료급식소 대열에 서서……

행여 아는 이 조우할까 조바심하며

날짜 지난 신문지로 얼굴 숨기며

아려오는 가슴을 안고 숟가락 들고

목이 메는 아픔으로 한 끼니를 만난다.


그 많던 술친구도

그렇게도 갈 곳이 많았던 만남들도

인생을 강등당한 나에게

이제는 아무도 없다.


밤이 두려운 것은 어린아이만이 아니다.

50평생의 끝자리에서

잠자리를 걱정하며

석촌공원 긴 의자에 맥없이 앉으니

만감의 상념이 눈앞에서 춤을 춘다.

뒤엉킨 실타래처럼

난마의 세월들……


깡소주를 벗 삼아 물마시듯 벌컥대고

수치심 잃어버린 육신을

아무데나 눕힌다.

빨랫줄 서너 발 철물점에 사서

청계산 소나무에 걸고

비겁의 생을 마감하자니

눈물을 찍어내는 지어미와

두 아이가 "안 돼, 아빠! 안 돼"한다.


그래, 이제

다시 시작해야지

교만도 없고, 자랑도 없고

그저 주어진 생을 걸어가야지.

내달리다 넘어지지 말고

편하다고 주저앉지 말고

천천히 그리고 꾸준히

그날의 아름다움을 위해


걸어가야지……

걸어가야지……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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